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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현선생의 양자이신 최윤식선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1919년 3.1운동에서 순국을 하셔서 그럴까? 9최윤식은 1919년 4월 경기도 양평군(楊平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피살, 순국하였다. 1919년 2월 중순 양평군에서 양부(養父)인 최대현(崔大鉉)이 작성한 고종 황제의 승하를 애도하는 제사를 올리기 위한 기부금 모집 취지문을 인쇄, 배포하였다. 이후 각 곳에서 3ㆍ1운동이 일어나자 최대현은 양평군 강하면(江下面)에서 독립만세를 주도하였다. 그는 3월 31일 양평군 강하면사무소 앞에서 면민 3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1일에는 양서면 도곡리(陶谷里)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 부근에 집합한 2천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최윤식은 4월 3일 오후 3시에 양부와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강상(江上)ㆍ강하ㆍ양서(楊西)ㆍ고읍면(古邑面)의 주민 4천여 명이 모인 대규모의 시위였다. 이들은 고읍면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양평면 양근리(楊根里)로 행진하였다. 이곳에서 시위가 한층 격렬하게 전개되자, 이를 탄압하기 위한 경찰의 발포로 3명이 순국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 8명 가운데 3명도 끝내 순국하였다. 이날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최윤식도 일경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