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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훈 선생은,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1907년 음 10월 박장호의진(朴長浩義陣)에 소속되어 의병 30여 명을 거느리고 강원도 평창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박장호는 황해도 장연(長淵) 출신으로 호는 화남(華南)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침탈되자 강원도 홍천에서 관동의병(關東義兵)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말에는 이강년(李康秊)과 연합하여 경기·강원지역을 넘나들며 일본 군경과 맞서 싸우며,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의병부대를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박장호의진에 속한 윤태훈은 1907년 12월 20일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부하 30명과 박성춘(朴聖春)이 거느리고 있는 부하 30여 명을 규합하여 평창군 연평면(蓮坪面) 녹산(鹿山)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다가 패주하였다. 이때 윤태훈은 가지고 있던 총을 묻어 두었다. 또 윤태훈은 1908년 음력 정월 15일 윤응원(尹應元) 등과 합세하여 강원도 홍천 일대에서 항전을 벌였다. 1908년 음 6월경 녹산에 묻어두었던 총을 찾아 가지고 돌아오던 윤태훈은 일본군 울진수비대(蔚珍守備隊)에 체포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