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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재를 양성하면 어찌 우리나라만을 비추겠는가, 또한 동양 전체를 널리 비출 것이다." 養成好人材(양성호인재)면 何獨光(하독광) 我東而己哉(아동이기재)아 亦足以(역족이) 普光於東半球矣(보광어동반구의)리니 [황성신문 1908년 5월 3일 "光東剙立(광동창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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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상과 만나 독립운동에 눈을 뜨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몽양 여운형의 행보는 폭넓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몽골 등 넓은 무대에서 활약하였으며, 여운형이 교유한 인물들은 당시 역사상 큰별들이었다. 여운형은 한국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염원과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한국의 독립을 넘어 동양 전체의 평화를 목표로 활동한 국제적인 정치인이었다. 1918년 여운형은 파리강화회의에 진정서를 제출하기 위해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여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하였다. 신한청년당의 활동은 3.1운동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따라서 3.1운동의 막후 연출자는 여운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기만과 제국주의는 장차 전 아시아를 침범하여 대통령 월슨 씨의 평화주의, 민주주의를 정복하려 함으로 한국은 반드시 독립을 회복하여야 하며 민주주의가 반드시 아시아에 정착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