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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류인석(1842~1915)선생의 본관은 고흥으로 강원도 춘천시 남면에서 중곤공의 둘째아들로 태어나셨다. 화서 이항로, 중암 김평묵, 성재 류중교 세 선생 문하에서 금계 이근원 항와 류중악 선생과 동문수학하셨다. 선생은 세 선생의 도통과 위정척사사상을 정통으로 계승하고 민족자주의식을 발현하여 항일독립투쟁으로 연결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하셨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라는 변괴가 있자 제천 장담에서 문인사우들에게 처변삼사를 제사하시고 지평의병 창의를 간접적으로 후원하셨다. 모친 상중임에도 이필희 이춘영 안승우 등 제자들의 간곡한 추대로 영월에서 대장이 되어 크게 전과를 올렸다. 지평의병을 기반으로 제천에서 호좌의진을 출범시켜 충주관아를 점령하고 영남까지 군세를 떨치는 등 빛나는 전과를 올리며 최대의 연합군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과 강기렴군의 공격의로 충주성을 내어주고 제천도 빼앗기게 되니, 재기를 도모하기 위하여 서행길에 올랐다. 그리하여 압록강을 건너갔으나 1896년 8월 회인횬 파저강변에서 무장해제 당해 부득이 의병을 해산하셨다.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가 항일세력을 규합하시고 1910년 '13도의군 도총재'에 추대되어 항일독립투쟁에 전력하셨다. 한편 강론하시어 항일독립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셨다. 선생은 이렇게 평생 의(義)자의 깃발을 붙잡고 조국광복을 위해 풍찬노숙하며 동분서주하시다 요동성 관전현 방취구에서 74세로 서거하셨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건국공로를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