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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 이항로 선생과 순정효황후의 영정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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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출생하였다. 1904년에 당시 황태자비였던 순명효황후 민씨가 사망하자 1906년에 13살의 어린 나이에 동궁계비(東宮繼妃)로 책봉되었고, 이때 아버지 윤택영과 시서모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 거액의 뇌물이 오갔다는 풍설이 돌았다. 이듬해인 1907년에 부군 순종 임금이 황제로 즉위함에 따라 그녀는 황후가 되었다. 순정효황후는 1910년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친일 성향의 대신들이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의 날인을 강요하자, 국새(國璽)를 자신의 치마 속에 감추고 내주지 않았는데, 결국 백부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고,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은 일제에 의해 피탈되어 멸망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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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서양세력의 엄습에 대항하는 민족운동 주력 세력인 위정척사파는 반외세를 외쳤지만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었고, 구한말의 의병운동의 중심도 이들이고 일제하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독립군을 진두지휘한 이들도 역시 위정척사파들이었다. 이러한 위정척사파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어른이 바로 화서 이항로이다. [출처] 화서 이항로 선생|작성자 랏지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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