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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영(李春永, 1869~1896) 선생의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본관은 덕수(德水)이니, 민화[敏和]공의 둘째아들이다. 양동면 출신으로 의암 류인석 선생을 종유(從遊)하여 학문을 닦아 위정척사사상이 확고하셨다. 그리고 금계 이선생의 영향을 받고 안승우와는 사상례(士相禮)를 하는 절친한 사이였다.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의암선생이 제천에서 처변삼사를 제시한 후, 안퇴앙과 계책을 논의하고 안승우⦁김백선⦁김사정⦁김용준 등 동지들과 함께 안창 만수암에 모여 의병봉기를 논의하였는데, 의암선생에게 진퇴를 물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창의호국의 깃발을 날리셨다. 지평의병의 실질적인 지휘자로 의병진을 이끌었으니, 제천에서 안승우 등과 이필희를 대장에 추대하여 전과를 이루셨다. 순흥에서 대장이 되었으니 영월에서 다시 류인석 선생을 대장에 추대하고 충주성 공략에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중군장으로 충주 수안보전투에서 용전분투하다 순국(巡國)하시니 28세였다. 광암 이규현이 육의사찬문(六儀士讚文)에서 “향배를 옳게 보고 정하며, 화하(華夏)를 높이고 이적(夷狄)을 물리치는 계획을 세워 지평에서 거의하여 충주에서 순절하니 충성은 해와 달을 꿰뚫고 신의는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쳤다.”고 공을 찬양하였으니 여기에 무엇을 더 붙일 수 있으랴. 정부에서는 선생의 건국공로를 기리어 1963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