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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은 역사적으로 보면 대몽항쟁의 상징인 함왕성지가 있고, 태고 보우스님이 훈도하시던 사나사가 있다. 용문사 상원사 사나사는 천년고찰로 임진왜란과 일제침략기에 의승군과 항일독립투사들의 근거지였던 호국사찰이다. 이러한 구국투쟁은 부처님의 교훈 破邪顯正(파사현정)의 실천이었다고 할것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래 일본은 온갖 계략으로 내정을 간섭하더니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무력을 동원하여 국왕과 세자의 머리를 늑삭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에 이어 1910년 우리조국을 불법부도하게 병탄하였다. 이로써 우리민족은 나라없는 서러움과 고통속에서 36년동안 피눈물을 흘렸던 것읻가. 곽한소선생은 하망리사람으로 1906년 스승 면암 최익현과 함께 태인에서 거의하였다. 1907년 권득수선생은 용문산에서 상원사와 용문사의 도움을 박ㄷ으며 항쟁하다 용문사에서 격전중 순국하였고 상원사와 용문사는 이때 의병과 의승군의 근거지라 하여 일병들에의해 소실되었다. 정부는 1990년 권득수의병장에게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출선생은 용문사 승려로서 박명호 곽영준 정호극 윤만성등과 군자금을 모금하다 붙잡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김상기 선생은 용문면 출신으로 이강년장군의 병진에서 활동하였다. 김윤구선생은 오촌리 출신으로 삼일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붙잡혀 징역 6월을 선고받았으니 정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