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page


186page

선생은 화옹구택을 당국에서 매하고 아울러 사랑채를 복원할 것을 건의하여 성사시키고, 퇴락해가는 구택을 중수하도록 힘을 기울였다. 신도비, 유허비, 노산사묘정비, 시비 등을 수립하는 일과 주자대전차의집보와 화서선생문집을 영인 간행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특히 주자대전차의집보는 화옹이 장자 괴원공 준에게 하여 편찬한 것으로 사계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문헌이다. 선생은 이 책을 찾기 위하여 수십년간 헤매었는데 급기야 모대학 도서관에 있음을 확인하고 영인해낸 것이었다. 또 화옹의 중계공의 문집이 필사본으로 남의 집상자에 들어있는 것을 찾아 사재를 들여 영인하였다. 선생이 화옹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구손에까지 미쳤으니, 어찌 심원광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병자년에 춘천시 모대학교에서 화옹 및 화서학파와 을미의병을 추론으로써 모독폄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