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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 이근원(1840 - 1918)선생은 성종대왕 11자 전성군의 11대손으로 지평면 월산리에서 노가당 양흡공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화서 이항로, 중암 김평북, 성재 류중교 세 선생의 도학과 의리정신을 계송하여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스승의 길릉 따랐다. 선생은 반초대를 만들고 처이부지의 의리로써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셨다. 장담강회에 출입하시고 광탄강회를 주관하셨다. 1895년 신병으로 지평의병에 참여하진 못하셨지만, 괴은 이춘영의 의병봉기에 영향을 주었으며 군자금을 두어 차례 내셨다. 1905년에는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순사한 분들의 충의를 기렸고, 을사오적의 죄를 극렬 토죄하셨다. 1906년 일진회의 무고로, 1910년 경술국치 때엔 소위 은사금 거절등으로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가 고문을 당해 기절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하셨다. 금계선생은 화서선생을 계승하여 양평에서는 유일하게 후학을 양성한 학자로 주회암, 송우암, 이화서, 김중암, 류성재 오현으로 영정을 모시고 삭망으로 절하며 정성껏 존경하고 사모하셨다. 또한 일직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셨는데, 김상태, 김태원, 안승우, 이규현등 수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배출하시어 조국광복에 이바지하시다 79세로 별세하셨다. 출처 : 양평을미의병묘역 금계 어록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