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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옛집터 옛집터 :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 731 / 현주소 : 도봉구 도봉로134길 14 김병로(1887년 12월 15일 ~ 1964년 1월 13일)는 전북 순창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에 걸쳐 독립운동가이자 법조인,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호는 가인(街人)이다. 그는 1919년 변호사로 개업한 후, 좌익과 우익을 막론하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건들을 무료로 맡아 변론했던 것으로 명망을 쌓았다. 그는 이상재의 뒤를 이어 신간회 중앙집행 위원장으로서 크게 활약했으며, 광주학생운동 때에는 진상조사위원장의 직책을 맡은 바 있었다. 신간회 해체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2년부터 창동리에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일제에 전혀 협력하지 않고 광복을 맞을 때까지 그곳에서 은거하였다. 광부 후에는 한국민주당에 참여하여 중앙감찰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초대 및 2대 대법원장으로서 9년 3개월 동안 재임하였다. 특히 그는 이승만 정권의 간섭과 외압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는 데에 혁혁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송진우, 정인보와 함께 창동의 세 마리 사자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