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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은, 평북 용천(龍川) 사람이다. 1916년 평양고등보통학교(平壤高等普通學校)에 진학하였다. 그는 형인 은석(銀錫)이 3·1 운동 당시 평북 학생운동을 맡고 있는 관계로 그가 평양고등보통학교의 연락을 맡았으며 은석을 도와 전단배포와 시위 등을 통하여 3·1운동에 참여하였다. 3·1 운동 후 오산학교를 마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에 입학하였다. 동경고등사범학교 재학시절 민족주의자였던 김교신(金敎臣)·송두용·정상훈(鄭相勳)·유석동(柳錫東) 등과 신앙클럽을 결성하고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을 발행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1928년 귀국하여 모교인 오산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오산성서연구회를 조직하여 신자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양하였다. 1940년 김혁(金赫)이 평양 만경대 앞 송산리에 세운 농사학원을 맡았다가 김혁과 함께 체포되어 평양 대동경찰서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2년에는 성서조선에 '조와(弔蛙)'라는 글을 실었다가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하기도 하였다. 어떤 혹한에도 살아남는 민족의 희망을 개구리의 생명력에 빌어 표현했다고 하여 '성서조선'도 폐간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