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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 오산(吾山) 이강 선생 호는 오산. 평남 용강출신으로 1903년 미주로 이민하여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였다. 안창호를 만나 1904년 공립협회를 창립하고, 기관지로 공립신문을 창간하여 주필로 활동하였다.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 양기탁등과 함께 비밀결사로 신민회를 결성하여 국권회복운동을 펴다가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1909년 연해주에서 재로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고, 각 지방에 지회를 설치하여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해조신문을 창간하여 논설기자로 활동하고, 대동공보로 제호를 고친 뒤에도 편집 책임을 맡아 한인동포들의 독립덩신 고양에 힘썼다.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처단 계획을 지원하였고, 의거 뒤에는 변호활동에 노력하였다. 시베리아 치타로 이주한 뒤에는 정교보를 발행하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전파하는데 애썼다. 1919년 9월 강우규의사가 새로 부임하는 재등실 총독 처단 의거를 결행하자 후원자로 지목되어 일경에 붙잡혀 서울로 와 곤욕을 이렀다. 1919년 말 상해로 탈출하여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정, 의장으로 활약하고, 흥사단 원동지방위원회를 설치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중국 하문에서 강연하다가 다시 일경에 붙잡혀 평양으로 와 징역 3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다시 중국으로 탈출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8.15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