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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光復軍 總指揮官 白山 池靑天 將軍 紀蹟碑(한국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 기적비) 아 아 슬프외다. 지난 1910년 경술에 우리나라가 논망하였고 뒤를 이어 1919년 기미3.1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수 많은 애국지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몸을 바치기로 비장한 결심을 하였다. 특히 조상의 유업과 자족을 버리고 이역 몇만리를 발섭하면서 풍한과 서온을 가리지않고 악전고투한 민족의 영웅은 더욱 거룩하였으니 백산 지청천장군이 바로 그런분이다. 장군의 본명은 석규료 자는 대형이요 백산은 그 자호요 관은 충주였다. 왜경의 추적을 피하여 어머니 경주이씨의 성을 따라 이청천으로 변성명하였다. 그 선계를 상고하면 태보평장사 선의공 경과 문하시중 충원부원군 용기는 모두 현달하였고 아버지 재선은 통정이다. 장군은 1888년 이조 고종 무자에 서울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지혜와 용맹이 뛰어났었다. 일찌기 배재학당을 거쳐1908년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동학 40여명과 함께 국비로 일본 동경 육군중앙유년학교에 유학하여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자 망국의 비보를를 들었으나 도일의 대사를 도모키위하여 비분강개를 잠시 억제하고 배울 것을 배워 1913년에 졸업하였다.곧 일본군 장교에 임관되어 일신의 영달이 눈앞에 보였으나 장군은 말설히 여겨 기꺼이 버렸다. 3.1운동을 계기로 삼아 최신의 병서와 군용지도를 깊이 간직하고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만주로의 탈출에 성공하였다. 곧 통화현 신흥무관학교의 교성대장에 취임하여 유능한 독립투사를 많이 길러내어 각지에 흩어져있는 학교와 다른 무장단체에 파견하여 일을하게 하는 동시에 만주에 있는 독립군과 서로 제휴하여 한만국경을 넘마들며 여러차레 적의 군경을 기습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었다. 청산리전투뒤 왜군은 만주 전역의 韓僑(한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그 마수가 신흥무관학교에 까지 미쳤었다. 장군은 내득2학주대를 거느리고 안동현으로 옮겨 홍범도장군의 정일군과 합세하여 끊임없이 적군과 싸우며 밀산으로 가서 다른 무장단체들과 함께 대한독립군단을 편성하여 장군은 부사령관에 취임하였다. 1921년 노령으로 넘어가 왜적에게 저항하는 한편 일그수크에 고려군관학교를 세우고 교장에 취임하여 인재를 기를제 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