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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지구 전적비 8 m 중공군의 침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시련기. 미 제10군단 예하 2사단이 원주 남쪽의 판부면 관설리와 서곡리 일대등지에서 우군철수 부대를 엄호한 후 원주를 공격하여 북한군 3개 사단을 격퇴, 원주를 탈환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미 2사단은 미 제37포병 대대의 지원 하에 북한군 3개 사단과 1주일간 공방전을 전개하여 원주를 탈환하였으며 북한군은 많은 손실을 입었다.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여 공산군으로 하여금 침입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음으로 아군은 공세로 이전할 수 있는 계기를 조상하게 되었으며, 북한군과 중공군은 이 전투를 고비로 하여 공격을 중지하고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이 전투로 원주에서 제천과 충주에 이르는 주요 도로를 확보함으로써 국군 3군단과 미 10군단의 전열 정비에 기여하였다. 1951년 1월 15일과 22일, 릿지 웨이 장군은 중공군의 배치와 규모를 탐색하기 위해 두 차례 위력수색 작전을 실시하였으며, 이로써 중공군 개입 후 최초 소규모 공격작전이 되어 향후 전면 공세를 위한 시발점이 되었다. 중요 전략 요충지였던 원주지구 인해전술로 침략하여 오는 중공군, 북한군 전력에 대항 물리친 우리 국군 5사단, 6사단, 8사단과 미 2사단, 제 1해병사단 그리고 네덜란드 및 불란서군의 용전했던 발자취를 기리고 이때 전사한 영령들 명복을 빌고자 1954년 3월 15일 1군사령부에서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55 강원 원주시 태장2동 1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