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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청년단원들이 협력한 가운데 교전을 벌려 북한군 1개 중대를 괴멸시켰다. 11) 이와 함께 동해에서는 해상포격전으로 상륙정 1척을 격파하고 발동선 1척을 나포하였다.이와 같은 전 승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에 해군본부는 동해시 망상동에 ‘옥계지구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6·25전쟁 때 강원도는 이와 같은 기록 이외에도 북진을 위한 38도선을 처음 돌파한 지역이 기도 하다.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반격작전을 개시한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여 북진을 계속하여 동부전선의 제 3사단은 9월 30일 38도선에 도달했다. 12) 하지만 38도선 돌파 는 정치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국군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권한과 국군의 작전권을 가지 고 있는 유엔군사령관의 지휘권 관계에서 대통령으로부터 북진을 명령받은 정일권 국군총사 령관은 제3사단이 북방 하조대에서 적의 사격을 받아 큰 손실을 입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제8군단 사령관인 워커 장군의 승인을 받아 10월 1일 38도선 돌파명령을 국군 제3사단에 하 달하였다. 13) 6·25전쟁의 처음과 관련된 내용과는 정반대인 6·25전쟁의 마지막 전투도 강원도 지역에서 있었다.휴전협정이 막바지에 있던 시점인 1953년 7월 20일부터 7월 27일 휴전이 선언된 날 까지 중공군의 최후공세를 막아 38도선 북방 35Km지점까지 확보한 425고지 전투는 화천댐 과 화천발전소를 확보한 6·25전쟁의 마지막 전투였다.이 전투의 승리로 확보한 화천발전소 는 한국의 전후복구를 위한 전력공급에 큰 기여를 하였다.이와 같은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1991년 강원도 철원군 법우리에 국군 제7사단은 사단을 상징하는 7개의 계단 위에 7m높이 의 7층으로 된 425고지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이외에도 휴전협정이 진행되는 동안 전면전을 회피하면서도 휴전 후 유리한 지형을 차지 하기 위해 강원도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고지 쟁탈전이 계속되었다.이러한 이유로 강원도 지역은 피아의 주력이 충돌한 치열한 격전지가 되어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백마고지 전투, 저격능선 전투,펀치볼지구 전투,피의능선 전투,도솔산전투,백석산전투,351고지 전투 등이 벌어졌다 .이와 같은 전투의 승리로 우리는 동쪽에 넓은 지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2.베트남전쟁과 강원도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파병은 냉전시기에 자유진영을 지키기 위한 이념적인 것뿐만이 아니 라 한국의 국가건설에 기여를 한 사건이었다.강원도는 한국군의 베트남파병을 위한 파병장 병의 훈련을 실시하던 훈련장이 있던 지역이다 .강원도는 훈련장이 있던 화천군 간성면에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베트남참전 용사 만남의 장’을 조성하였고,1965년 베트남전쟁 파병 을 위한 훈련 중 훈련병의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많은 부하의 생명을 구한 11) 옥계전투는『6·25전쟁사2』(2005), pp. 600-603.을 참고하라. 12) 남정옥(2005), p. 200. 13) 정일권,『정일권회고록』(서울: 고려서적, 1996), pp. 258-277.; 정일권,『6·25비록: 전쟁과 휴전』(서울: 동아 일보사, 1986), p.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