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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천황 저격을 시도했던 독립열사 3분이 이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이봉창선생은 사쿠라다몬(櫻田門) 앞에서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투척하여 검거되어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김지섭선생은 황궁의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을 투척하여 검거되어 이치가야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지바(千葉)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박열선생은 1923년 9월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일본 왕태자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황을 비롯하여 황족과 내각 총리대신, 조선총독 등을 폭살하려고 폭탄을 구하러 중국 上海로 동지 金重漢을 파송하다가 피체되었다. 이 사건으로 1926년 2월 대심원 판결에서 소위 대역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박열은 이치가야형무소와 지바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