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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원주 전투에서 오른 팔과 오른 다리를 잃었다. "나의 부상은 자유를 위한 희생의 상징이어서 자랑스럽다." 웨버 대령은 1950년 8월, 187공수연대 소속으로 한국에 전개되어, 인천상륙작전, 북한 숙천.순천지역 공수작전 등에 참가했다. 웨버 대령은 1951년 2월 15일 밤11시 원주전투에서 적의 수류탄 공격으로 오른 팔을 잃었고, 다음날 2시경 박격포탄으로 오른 다리를 잃었다. 다행히 영하 23도의 혹한은 피를 동결하키면서 그의 목숨을 구했다. 웨버 대령은 본국으로 후송되어 1년간의 수술및 재활과정을 거쳐 심각한 장애를 입은 장교가 현역으로 보귀하는 첫 번째 상이군인이 되었다. 잊혀진 전쟁을 승리한 전쟁으로 바꾸다. 웨버 대령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낸 명예로운 희생이 미국 역사 속에서 잊혀져 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웨버 대령은 한국전 참전용사기념비와 추모의벽을 세우고, 미국의 교과서에서 불과 몇 줄에 불가한 한국전쟁의 가치오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중.고등학교를 방문하여 한국전쟁과 한미동맹을 설명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남긴 말. "한국이 나에게 빚진것은 하나도 없다. 자유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유가 위협받을 때 자유를 지켜야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자유 국가가 되었다. 이제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갖도록 힘써야한다. 워싱턴DC의 한국전참전용사기념비에 새겨진 'Freedom is not Free.' ,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희생과 의무가 따른 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