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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부대전적비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14-2-30 / 관리자: 백령면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돌연한 참전으로 부득이 후퇴할 당시 중공군의 3차 공세로 1951년 1·4 후퇴를 하게 되었다 당시 백령도로 북한의 많은 주민들이 피난하여 왔으며, 미 8군 작전참모부 예하 첩보작전기지 사령부로 백령도에 윌리암에이블기지(3월 레오파드 기지로 변경)가 창설되어 1951년 2월 황해도 장연·신천·은율·안악·옹진군과 일부 평남북 출신 애국청년들이 국제연합 관할의 미극동 사령부 제 8240부대에 소속되어 15개 동키 유격부대들을 조직하였고, 작전지역은 평북 신미도와 대화도로부터 옹진군 홍미반도의 등산곶까지였다. 그 중 장연군출신 청년들은 백호부대 (DONKEY-4)를 창설하였다. 이들은 귀중한 목숨을 바쳐가며 적지 서해 일원에서 기습작전과 침투공작으로 수많은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시해 5개 도서를 지켜내어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수호하였다. 1951년 2월부터 1954년 2월까지 계급도 군번도 없이 5,610명의 북한 출신 유격대원이 악전고투 끝에 공산군 3개 군단을 최후방에서 견제하는 전략적 효과를 거두는 전공을 세우고 장렬히 산화한 백호부대(D-4) 전우 228명을 추모하고 행방불명자 83명, 전상자 120명을 위로하고자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한 몸을 초개와 같이 바친 젊은이의 넋과 뜻을 기려 이곳에 전적비를 세우게 되었다. 이제 여기를 찾는 사람들은 먼저 이들 앞에 고개를 숙일 일이다. 백호 전우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