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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3.1운동 발상기념비 우리가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하고 그 포학무도한 압정에 시달리던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은 순식간에 거족적인 항일 투쟁으로 발전되었다. 그 때 총성은 천지를 울렸고 강산은 피로 물들어 갔건만 설천 사람들은 이를 겁내지 않고 이 고을에서 맨먼저 애국의 횃불을 들었다. 그해 4월 2일 이에모의 선도와 정갑린, 정상기 하준천등의 권면으로 하준호 정순조 정흥조 정임춘 류찬숙 윤주순 정학순 정익주 정재모 정몽호 이찬덕 윤희도 양재문 류봉승 문환조 정두기 정남섭등 많은 설천 면민이 남양 금음 문항 노상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불렀다. 4월 4일에는 남해읍 장터로 가서 김희조 박경수 강한문 정용교 하상근 원복상 장학순 등과 합세하여 태극기를 들고 천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른 뒤 군청 경찰관주재소외 각 기관을 점거하고 자주독립을 외혔다. 이로 인해 일제의 통치는 빛을 잃었고 고을에서는 연달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통분하게도 이중 23명은 일경에 붙잡혀 가서 1년 내지 3년간의 모진 옥고를 치렀고 마침내 장학순은 순국까지 하였다. 장하다. 그 충절, 조국을 되찾고자 죽음으로 항거한 그 공로를 우리 어찌 잊으랴. 그로부터 67년 나라의 사업으로 여기에 비를 세우는 뜻은 님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강토를 길이 지키자 함이니 다시는 남의 침략을 받지 않도록 우리 모두 굳게 뭉쳐 힘을 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