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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지사 영주 김공 상덕의 자는 현여요 본관은 경주요 영주는 아호이다. 공은 일찍이 1891년 전한 고종 기축12월 10일 고령 지천리에서 태어났다. 공은 고려판도판서 장유의 후예요 문과 이조정랑 ?제 수하의 12대손이요 황고 돈희 황비 김해김씨의 제5남이다. 1900년 내곡서당에서 이홍화두훈에게 한학문학을 배웠고 1917년 일본 동경 정칙영어학교를 거처 조도전(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다. 1918년 유학학생동지들과 재일본 동경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1919년 조선자주독립실행위원과 동 단 대표에 피서되어 2.8독립선언문 결의문 민족대회 소집 청원서등을 발표하는 도중 왜경에게 연행투옥되었다. 1920년 7개월의 형을 마친뒤 상해로 망명하여 조국광복에 투신하였고 1926년 1926년 만주로 옮겼었다. 1927년 조선독립운동자 후원회 창립위원으로 김좌진과 합세하여 한국독립단 간부에 피임되어 모스크바에서 열린 동방혁명대표자회의에 참석하고 주중 청년회 총대표로 활약하였ㄷ가. 1937년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옮김에 따라 부주석 김규식과 함께 사천성 손가화원에 이주하였다. 1942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학무위원장에 선임되었고 1945년 8월 조국이 광복되자 문화부장으로 김구주석과 함께 귀국하였다. 1947년 미군정의 과도입법회의 입법위원에 피선되었고 경신고등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1948년 초대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고 헌법초안위원에 선임되었으며 반미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50년 6.25동란중 북한에 피납되어 항명불굴로 관서벽련에서 우해되었다 한다. 부인 진주 강태정여사는 석선의 딸이요 1939년 사천에서 하세하였고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