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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 군민들의 정성을 모아 비를 세운다. 북한 김일성은 독립단원을 살해한 마적 김성주가 위장한것이며 6.25사변을 일으킨 장본인임을 명백히 밝힌다. 우리들의 기억속에는 아직도 6.25의 악몽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며 지난40년동안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끝에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명실상부한 자유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하였다. 해방후 6.25사변전후(1946-1956) 민간특동대의 활약상황을 이 비분에 새겨 후손들에게 애국충절을 일깨워주고 특히 반공정신을 고취시키고자 한다. 8.15해방후 좌우익의 대립이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남노당 지하계열은 김일성의 지령에 따라 각 관공서는 물론 우익인사및 농민에 대한 테러기습 방화 약탈 남치 살해등 온갖 만행을 자행함으로서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조성하여 결과적으로 폭력적 민중봉기를 유발시켜 대한민국을 전복하기위한 온갖 책동이 계속되고 있을때 이를 방관할수없이 위국위민과 통일집젼으로 공비섬멸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1946년 5월 부동면 거주 청년 25명을 규합 윤병로가 특동대를 조직하였다. 특동대원은 철창과 죽창으로 불고가사하고 주간은 공비은신처인 주왕산 인근 산 일대및 노래산까지 수색작전하고 야간은 각 마을을 경비 공비들과 누차 작전하였으며 창만으로는 공비들과 대항하기에 불안하여 경찰서에 청원하여 1948년 2월 총기 20정과 수류탄 50개를 지급받아 가일층 전력한바 공비침해가 줄어들고 공비들도 우리 특동대를 두려워하였으며 특통대원들도 지역치안을 더욱 강화하여 공비소탕작전에 노력하였으며 1956년 총기를 반납하고 동심회로 재 발족하여 국가 유사시에 언제든지 나설것을 다짐하였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있을때 젊은 혈기로 투합하여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킨 특동대원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깊이 아로새겨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대대손손 계승하는것이 우리의 의무요 책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