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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6월부터 이듬 해 12월까지 30여 차례의 밀회를 가져 재판 한국인 고학생 민족주의 그룹인 충성회란 민족단체를 결성하고 당기와 당표징을 정하여 애국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이 발각되어 선생과 동지들은 1942년 12월에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44년 1월 27일 일본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징역3년ㅇ르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에 일본제국의 항복으로 1945년 8.15 광복을 맞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선생은 광복 후에 이범석 장군이 이끌던 민족청년단에 몸을 담고 국가 발전에 헌신 노력하였으니 이는 투철한 항일정신과 숭고한 애국사상이 물든 때문이었다. 1978년 3월 3일 향년 52세에 별세하였다. 1980년 8월 14일에 대통령표창(제4976호)과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선생은 청주 한씨 사이에 두 딸 정우와 선우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