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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병으로 중국 한구에서 훈련을 받게되어 탈출을 하기 위해서는 국내보다는 중국 대륙으로 배치된 것이 다행이라 마음 먹고 훈련기간 중 스스로 우자 행세를 하며 은밀히 중국어를 익혀 지리 파악에 몰두하면서 탈출 계획을 추진하던 중 행군이 시작되어 한구에 도착한지 9일 만인 1944년 12월 27일 때 마침 부대가 호남성 평향헌을 지나다가 전재덕 동지와 필사의 탈출을 감행 천우신조로 국부군 유격대를 찾아 합류하였다. 이때 부터 선생은 항일 전투에 참가 용전하였고 1945년 1월 12일 중국 제9전구에 편입한 한국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제1분대에 소속되어 독립운동에 맹활약 하였으며 같은 해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광복군 총사령부의 명에 따라 제9전구 산하 일선 유격부대를 순회하면서 적의 첩보 수집과 분석, 포로 심문 및 일제의 비밀문서 번역, 적진에 강징된 한국인 병사들의 탈출지원 등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1946년 6월 23일 이범석 장군의 인솔하에 상해를 거쳐 귀국하였으며 1991년 12월 17일 69세로 별세하여 선향에 묻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