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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고저 노력하였다. 기미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나 전국 방방곡곡으로 나가니 뜻한 바 있어 고향에 돌아와서 권오환, 김의경, 전용신, 박희목 등과 뜻있는 동지를 규합하여 1919년 4월 2일 선산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선생은 도개면 조직책으로 활약하고 거사 당일 오후 각지에서 모여든 군중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선동하였다. 이에 놀란 일본 경찰이 급거 출동하여 무력으로 저지하니 주동자들은 일단 피신하였으나 경찰이 시위군중과 주동자의 가족을 볼모로 잡아다가 고문을 하니 선생은 스스로 경찰서에 나아가 당당한 기개를 보였으며 잡혀온 사람들은 석방토록 하였다. 선생은 구속 수감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항거하다가 더욱 혹독한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보안법위반죄로 징역 10월형을 받아 마포 형무소에서 참옥한 옥고에 시달려 12월 30일 사경에 이르러 임시 석방이 되었으나 나라 잃은 천추의 한을 품고 1920년 2월 20일 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