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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40 그는 해병대 장교, 조경학 박사, 삼성에버랜드 사원을 거쳐 영어 연구가까지. 쉽게 이어지지 않을 인생의 순간순간들을 열정이라는 고리로 이어온 그의 인생의 제1막. 해병대 장교는 어떻게 시작한 것 일까. “그때는 한국에서 생소한 조경학을 공부했는데 재미가 있는 거야. 그래서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가려고 했는데 우리 집이 너무 가난했던 거지. 학비를 좀 모아보려고 월급주는 장교로 군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전에는 해병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 혀 안 해봤고 그저 멋있는 군대. 잘 싸우는 군대로 내 머리에 이미지 되어 있었을 뿐이었거든. 근데 장교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딱, 해병대로 가야겠다. 라고 생각한 거지. 사실 해병대가 너무 힘들다는 인식이 있어서 장교 경쟁률이 좀 낮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고. 하하.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장기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뿐이거든. 해병대는 정말 뜻하지 않게 나에게 찾아온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지. 그 이후 내 인생을 추진해 나가는 정신력이 여기서 나왔 으니까. 솔직히 장교후보생 훈련기간은 너무 힘들어서 괜히 왔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딱 그때 한 번만 그런 생각을 그 이후로는 전혀 후회해 본 적이 없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니까.” 해병대 장교 생활이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이야기하는 이 사람. 군 생활을 이야기할 때는 만면에 웃음을 짓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억 하는 것을 보니 해병대 장교 생활이 정말 자신에게 큰 사건이긴 했나 보다. 장병들을 이끌어 가야 했던 그의 장교 생활은 그럼 어땠을까? 넘쳐나는 열정에 남들과는 다른 경험담들이 기대된다. “강화도에 해병부대가 창설되기 시작하면서 내가 창설된 대대 예 하 중대 예하 소대의 최초 소대장으로 갔어. 근데 당장 병력이 있나. 각지의 해병부대에서 병력을 차출해 왔는데, 대원들 인적사항을 보 니까 기가 차더라구. 다들 뭔가 문제점이 있는 대원들을 차출해서 새 로 창설되는 부대로 보냈던 거지. 이런 대원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까...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내 결론은 형제처럼 대해주자는 거였 어. 우리 소대 내에서는 쓸데없는 군기는 다 없애고 근무를 제대로 서 면 된다. 군인으로서 기본 임무인 경계근무를 완벽하게 서는 것이 진 정한 군기다. 라고 강조한 거지. 잘 지냈어. ‘너희들은 2년, 나는 3년. 60년이 넘는 인생에서 이 정도 기간을 참고 이겨내지 못하면 너희나 나나 인생 잘 살 수 없다. 이겨내자. 우리 잘 지내보자.’고 열변을 토한 진심이 전해진 걸까?” 이렇게 문제 대원들이 모였던 문제 소대는 열정 넘치는 소대장의 열정 넘치는 지휘로 인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그의 소대는 훌륭하 게 임무를 수행하는 모범 소대로 변모한다. 그렇게 열정 넘쳤던 소대 장이었던 그에게 이번 해병대 총기사건은 좀 더 가슴아프게 다가가 지 않았을까. “병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사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 혈기 넘치는 젊은 청춘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변함이 없을 거야. 그래서 내 가 소대장을 하던 때와 다름없이 지금도 간부들의 역할이 중요한 거 야. 소대장은 자기 소대원 얼굴만 보면 다 알거든. 이 아이가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병영문제 해결의 핵 심은 간부의 자질 향상이야. 대원들을 관리하는 방법을 잘 알아야 하 는데 아직 많이 모자란 것 같아. 대원들이 성향이 많이 달라졌잖아. 온 실 속의 화초로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 해병대의 군문을 두드리는데 옛 날 방식으로 대원들을 대하고 지휘해서는 절대 안 되지. 소통이 안 되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53 박희재 사령관의 부관시절 공관에서김포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