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page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51 Vol. 40 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내를 따라간 교회에서 인생 2막의 빛을 발견 했다. “병을 고쳐주면 죽는 날까지 세속 욕심을 버리고 참되게 살겠다고 했거든. 그리고 열심히 치료를 받았는데 잘 완치됐어. 그러고 남은 인 생을 성직자로 봉사하면서 살고 있는 거야. 맹세한 대로.” 미국 미드웨스트신학대에서 교회음악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 는 한국 가요계에 그룹사운드를 들여온 것과 같이 한국교회의 목회 활동에도 새로운 분야를 도입하며 선구자의 길을 걷고 있다. “평생 음악을 했는데, 목회에서도 음악을 하고 싶었죠. 그런데 국 내에는 그런 과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이고, 그 음악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어서 너 무 보람차죠.” 미국에서 정식으로 음악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예음음악신학교를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에 목사를 양성하 는 일반 신학교는 많지만 음악 목사 양성기관이 없다. 음악목회가 더 효과가 높다고 믿는 그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이 어려운 유 학을 선택하지 않고도 한국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학교재정이 적자라 경제적 어려움이 있지만 힘 들지는 않단다. “이미 인기, 명예, 돈 모든 것을 포기했어. 한때 최고의 대중가수가 이런 말을 하니까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이에요.”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노해병의 사회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병110기이자, 대중 가수이자, 목사인 그의 명함에 협회장이라는 직책이 하나 더 있다. “대중음악이 상업적인 유행가가 아니라 시대와 함께하는 품위있 는 문화예술로 인정받도록 노력할 거에요.” 한국대중음악문화진흥협회의 3대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대중음악 의 가치를 높이고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대중음악은 시대의 변천과 함께 대중들 속에서 희노애락을 같이 해 왔거든. 그런데 그저 소비문화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 너무 가슴 이 아파.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폭넓은 분야의 회원이 뭉쳐서 대중음 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사업을 추진할 거에요.” 유소년 축구단이 재능있는 청소년들을 발굴해 조기 교육을 펼치 는 것처럼 대중음악도 그러한 여건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한다. “청소년 대상 음악교육안을 개발하고, 대중음악사 자료들도 정리 해서 번듯하게 하나의 역사서를 만들어야 하고, 권위있는 대한민국 음악축제도 기획하고 있어. 아~ 아직은 할 일이 너무 많아. 허허”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의욕적으로 뜻한바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병대에서 배운 정신력과 추진력, 그리고 체력 덕분 이라는 윤항기 선생. 그의 모든 활동 저변에는 지극한 해병대 사랑이 근근이 흐르고 있다. 학교운영과 목회활동, 공연기획 그리고 인터뷰 며칠 뒤에 있을 해 병대군악대 정기연주회 초청 공연 준비로 인해 정말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 내내 화기애애 웃음꽃과 에너지가 만발했다. 진심과 열정을 담아 인터뷰에 응해준 윤항기 선생을 꼭 후배들에게 전해달라는 당 부의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사랑하는 대한민국 해병대. 불과 반세기가 지났을 뿐이지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선배로서 모군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 해 도울 것입니다. 후배들도 서로 사랑하고 이해해주고, 감싸주고 아 픔을 같이 나누면서 해병대의 진정한 전우애와 해병혼을 길러주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대표 부대, 정예의 해병대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