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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명성은 익히 들었다. 지금의 아이돌 을 능가하는 인기 록 그룹 키보 이스의 멤버. 병 110기 해병군악대 출신. 이미 이 두가지 이력만으로 거대한 산을 만난 느낌이다. 키보이스가 누구인가? 한국 가요계에 록 밴드를 최초로 선보이며 그야말로 열풍의 인기를 누린 것은 물론이 고 한국 가요사에 있어서도 발전의 분기점을 마련한 전설의 록 그룹 이다. 마치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와 이들이 한국 가요 계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 교육훈련단 신 병교육대에는 1150기가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병 110기는 그 모 습이 그려지지 않는 까마득한 대선배. 떨리는 마음으로 남산터널 건 너 예장동에 있는 윤항기 목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화려하지는 않으 면서도 존재감을 뽐내는 그의 학교, 예음음악신학교 총장실의 문을 열었을 때 당당한 풍채와 미소를 머금은 노신사가 나를 반겼다. 젊은 신세대 해병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해병의 만남은 그렇게 수줍게 시작되었다. “난 솔직히 먹고살기 힘들어서 해병대를 왔어요. 부모님을 일찍 여 의고 여동생(가수 윤복희님)과 어렵게 자랐거든. 동생이 15세에 해외 로 가고 나 혼자 남게 됐는데 막노동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어 디 의지할 사람도 없고 해서 먹고 사는 걱정을 덜고 싶었어. 타군은 학력을 따졌었는데 해병대는 아니었거든. 내가 초등학교만 나와서 말이에요. 호구지책으로 지원한 해병대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줄이야.”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해병대 이야기를 할 때면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보인다. 해맑은 선생의 표정을 보고 도저히 다른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었을뿐더러, 군악대 생활이 어떠했기에 지금까지도 해 병대 이야기만 나오면 행복해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병110기 해병의 군생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16주 훈련을 받고 포항으로 배치받았는데 그때 건물이 지금 포항 비행장에 있었어. 아휴~ 아주 열악했지. 거기서 이제 막 포항 사단 주 둔지를 만들려고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우리 군악대뿐 아니라 의장 대, 헌병대 등등 직할대는 주된 과업이 작업하는 것이었어. 각 부대가 맡은 주된 임무에 더해서 포항에 주둔할 사단의 터를 닦는게 보통 힘 든 일이 아니었지. 그때 군대가 먹는 것이라도 넉넉하게 나오던가? 아 니거든. 그런 고난 속에서 전우애가 피어난 거야. 그러고 보면 나는 군대에 와서 총도 쏴봤고, 주둔지 경계근무도 서봤고, 악기도 불어봤 고, 삽질까지 원없이 해봤어. 허허.” 의장대와 군악대는 멋있다. 그래서 수많은 해병대 행사와 지역 행 사에 해병대 군악대와 의장대는 빠짐없이 참가하며 멋있고 듬직한 포항시절 군복무 사진은 소중히 그의 한켠에 보관되어 있다. 미8군에서 공연을 펼치는 윤항기 키 보이스 순회공연은 늘 대성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