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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6개월. 서서히 늘어나는 실력과 함께 당당해지는 자신감은 보 너스였다. “나보다 더 훈련한 사람은 없다. 내가 최고다. 그런 자부심이 생겨 요. 정열을 다 바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보고싶은 사람 만나듯이 시합이 막 설레는 거에요. 그것이 자만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겠지만 자기 확신은 필수에요. 나를 믿어야 총알도 10점에 명중하는거지. 나 는 자신감이 떨어질 때 해병대 주문을 많이 외웠거든. 내가 해병대 장교인데 하는 기합. 아유~ 그 덕분에 심리적 안정이 많이 되었지.” 이런 과정을 거쳐 그의 아시안게임 3연패의 신화는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요즘은 엘리트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어릴 때부터 연습 하고 재능을 길러온다. 하지만 그의 사격 이력은 해병중위부터 시작 이다. 다른 선수들은 최전성기를 누릴 시기에 사격에 입문한 셈. 그 럼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권총 속사분야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고 꾸준히 그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같은 피나는 노력과 끊 임없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첫 아시안게임 무대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시아선 수권자였지만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금메달을 못 딴 게 문제가 아니야. 북한한테 졌잖아요. 해병대 장 교가 적군에게 진 거지. 정말 이를 악물었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이 일어났으니까. 그렇게 준비한 4년. 78년 방콩아시안게임에서 운명처럼 마주한 북 한과 영화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때..도 한국선수단 성적이 안 좋았어요. 개막 5일째였는데 금메 달이 없었죠. 속사권총 결승이었는데 북한 선수가 먼저 쐈습니다. 당 시 아시아 신기록이 589점이었는데 북한 서길산 선수가 2점을 갱신 한 거야. 591점이 나왔어요. 북한은 금메달을 확신하고 신이 났죠. 우 리 선수단에 와서 약을 올리면서 그럽디다. ‘동무들 우리는 금메달 6 개째야요’ 그리고 내 차례가 됐는데 난 보기 좋게 593점을 쐈지. 감독 하고 코치진이 서로 얼싸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감독이 얼마나 긴 장을 했던지 내 마지막 사격이 10점에 명중하는 걸 봤다지 뭐야. 앞 선수가 갱신한 신기록을 깨고 또 신기록을 쏜 것만으로도 특종인데 그 대상이 북한이었으니 대한민국이 뒤집어진 거죠. 거기다 첫 금메 달이었고.” 이 금메달로 그는 6개월 동안 대한뉴스에 보도되면서 지금의 박태 환, 김연아를 능가하는 스타가 된다.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43 Vol. 40 “금메달을 못 딴 게 문제가 아니야. 북한한테 졌잖아요. 해병대 장교가 적군에게 진 거지. 정말 이를 악물었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까.” 고도의 인내로 고통을 이겨내고 목표를 성취하는 해병혼을 그는 선수들에게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