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page


47page

비문 소백산맥을 세로지르는 삼국시대의 고전장, 이곳 화령성 요새지에서 붉은 침략의 무리를 쳐부수고자 봉황산 언저리의 동관리와 상달리를 지켰던 국군 제1사단과 제17연대 그리고 제1군단 정찰대의 장병들은 벽력같은 기습공격으로 북괴 제15사단의 주력을 여지없이 섬멸하였으니 그 눈부신 전공을 청사에 길이 남겨 자손만대에 전하고자 이 전적비를 세운다. 전사약사문 전쟁이 발발한지 2주째로 접어드는 1950년 7월 중순에 북괴 제2군단은 조기에 소백산맥을 넘어 아직도 대전과 청주지방에 분전중인 국군 및 유엔군의 퇴로를 차단하여 일대 섬멸전을 전개할 기도 하에 그들의 선봉인 제15사단을 속리산 동쪽의 깊은 계곡으로 투입하여 상주~김천 축선으로 돌파구를 확대코자 중앙돌파를 획책하였다. 이때에 제1군단에서는 이 지역의 적정이 불명하여 군단 정찰대로 하여금 화북~화서면 간의 공백지대를 탐색케 하였던 바, 14일 12시에 동비령에 다다른 동 정찰대가 북괴의 첨병소대를 발견하자 이를 기습하여 12명의 포로를 사로잡은 끝에 이 같은 적정을 확인하여 곧 군단에 보고하였다. 이에 육군본부에서는 보은에서 함창으로 이동중인 제17연대를 이곳 화령장에서 정지시켜 동정찰대와 함께 이 적을 현지에서 저지 격멸토록 명령하니 이로부터 매복 작전을 전개한 연대는 6일 동안에 걸쳐서 상곡리와 중달리 그리고 동관리 등을 오르내리며 유리한 지세를 이용한 기습공격으로 그들 제48연대의 주력을 격멸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25일에 현지에 도착한 제1사단이 그 임무를 인수 하여 25일까지 지연전을 피므로서 군은 다시 전선전마다 시간 여유를 얻어 제1군단은 안동지구로 이동하고 제2군단은 함창-상주 전선을 막았으며, 또한 미 제24사단을 비롯한 미 제25사단과 미 제 1기갑사단도 상주-김천 정면에 병력을 전진하는 등 낙동강 방어선의 형성에 크게 기여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