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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영웅 박동진중사 기념비 박동진중사는 밀양박씨 강수공파 72세손으로 1930년 1월 28일 문경시 유공동 263번지에서 박재무공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949년 1월 해군 신병12기로 입대하여 해군 일등병조로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작전에 분대장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괴의 6.25불법남침으로 낙동강 방어전선까지 밀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1950년 9월 15일 세기에 빛나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로써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38선을 돌파하여 압록강까지 승승장구 북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수집과 도서확보를 목적으로 한국해동동기동함대(PC-701,702, 704, YMS-513, JMC-301, 307,309,313gka) 승조장병으로 구성된 상륙부대(육전대)를 편성하여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작전을 전개하였다. 박동진중사는 JMC-301함에서 차출된 육전대1소대 1분대장으로 1950년 8월 18일 유엔군함정과 PC-702,704함의 함포지원을 받으며 덕적도에 성공적으로 상륙하였다. 박동진분대장은 산악고지로 도주하던 적26명을 사살하고 7명을 포획하는 등 격전끝에 덕적도를 성공적으로 점령하였다. 이어 8월 20일 인천상륙작전의 중요한 거점인 영흥도 탈환작전에 참가한 박동진분대장은 북한군과 치열한 작전을 전개하여 적2명을 나포하고 국국4명을 구출한 후 진격을 계속하였다. 진격도중 내리2구를 탈출한 적 15명이 내리 남방고지에 잠복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박동진중사가 소속된 1소개가 고지공격을 하자 적은 고지를 포기하고 해안선의 농가로 도주 잠입하여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이에 1분대장 박동진중사는 분대의 전진을 멈추게 한 후 양손에 수류탄을 가지고 단독으로 농가3미터까지 포복으로 접근하여 1발을 적진에 투척하였으나 적의 저항이 계속되자 적을 완전히 박살내기 위해 두번째 수류탄을 투척하고 엎드리는 순간 적의 집중사격을 받아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박동진 분대장의 용맹과 분투를 지켜보던 전 분대원을은 분기충천하여 돌격을 감행 적을 격멸하고 영흥도를 완전히 탈환함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거점을 확보하고 상륙기동부대의 안전운항을 확보하여 9월 15일 전개된 UN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