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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구장님과 고도마신부님, 오요한신부님은 1950년 6월 25일 사변때 주님의 성전과 양들을 끝까지 돌보시다가 마침내 1950년 7월 24일 피납되시었다. 공산당들에게 총칼로 위협을 당하여 그네들의 방패로 삼아 시내로 끌려다니시면서 온갖 수모와 고통으로 수난을 당하시었다. 그 후 8월 무더위의 어느날 정든 신도들과 성당 교구청 그리고 목포와의 마지막 결별을 하시었다. 그 후 광주교도소에서 갖은 형벌과 기아의 극도로 쇄진하신 몸을 가눌길없어 몇번이고 쓰러지면서 그네들에게 이끌려 수난길에 오르시었다는 마지막 목격자의 증언이 있을뿐이다. 수복후 두루 탐문하였으나 그 어른들의 행적을 알길이 없다. 이억만리 이 땅위에 청춘의 고귀한 넋으로 귀한 생명 바쳐 주님의 포도밭 일구시어 밑거름을 놓으시었다. 이곳에 흘리신 핏방울 알알이 구원의 열매맺으리라. 억조창생들에게 길이 숭교의 숭고한 넋을 이어받아 간직하고저 목포지구 신도들의 정성을 모아 이 비를 여기에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