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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운강 김상수선생은 예조판서 승로공 22대의 후예이니 일찌가 고종황제의 시위무관으로 충군지성을 다 하다가 일제의 강압으로 사직이 무너지매 망국의 통한을 품고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조국광복을 위해 활약 ○○삼개성상에 ○○상심한 고국을 그리는 정 못 내 참지못하고 다시 돌아와서 향당청년을 규합하여 수양학교 를 설립 민족기상을 고취하고 신진문화릐 교양을 보급시켰으며 을축년에는 작공조회를 조직하여 ○○지주 ○○○힘으로 영세농민의 사활문제를 해결하였고 다시 기미년의 독립만세운동에도 선봉하여 피 맺힌 절 ○로써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켰으며 항일투쟁의 기수로서 전후 3회에 6년간의 옥고를 치루었고 또한 동아일 ○○○○역과 ○○○의 창설등으로 자주독립의 민족정기를 선양하는등 일생을 조국과 동포를 위 ○에서 바친 ○사의 그의 빛나는 공적을 이만면민의 이름으로 여기에 새겨서 길이 후세에 전하노라. 단기 4298년 4월 28일 지도면민 일동 근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