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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는 내고향 역사인물 장병준선생의 비석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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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8일에 전라남도 무안에서 광무황제 안장식을 거행한다고 집합시킨 주민들 수천명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부르도록 유도하고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고, 일경의 추격을 피하여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임시의정원 전라도 의원으로 피선되었으며, 제4차 의정원회의에서 그는 손두환(孫斗煥)·한위건·장도정·임봉래 등 의원과 연서하여 "한 나라에 국회가 둘이 될 수 없으니 임시의정원과 국민의회는 시급히 통일하여야 한다는 것과, 상해에 설립된 의정원은 정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이를 분립(分立)하기 어려운 즉 다른 곳에 설립된 의회를 속히 본 의정원에 통일케 하자"는 제안을 제출하여 통과하도록 하였다. 1920년 초에 군자금 조달차 귀국한 그는 서울에서 이동욱 등과 3·1독립운동 1주년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할 계획을 추진하다가 일경에 탐지되어 동년 3월 20일에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동년 1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9년에는 신간회 목포 지회장에 취임하였으며 중앙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