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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1일부터 만세시위가 시작되었으며 3월 20일에도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으나 일경의 감시가 심하여 곧 해산당하고 말았다. 이에 읍내에 거주하는 조극환(曺克煥)이 주동이 되어 4월 10일 영암읍 장날을 기해서 학생·주민들을 동원하여 일제히 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였다. 4월 10일 오전 9시를 기하여 1천여 명의 만세대열은 회사정(會社亭) 광장에 모여 박규상(朴奎相)으로부터 독립선언서 낭독이 있은 다음 독립만세를 부르며 읍내 중심가를 향하여 일제히 시위에 들어갔다. 이날의 시위로 학생, 유지등 30여명이 일경에게 체포되었으며, 그중 20여명이 옥고를 치렀다. 출처 : 독립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