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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그리스도의 교회 순교사 상월 그리스도의 교회는 1913년 영암군 학산면 지소마을에서 설립되었고 화재로 교회가 전부 소실되자 상월리 상리에 예배당을 옮겨 짓고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그 이후에 3번의 예배당을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중략.. 빨치산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금지시키고 건물을 헐어 불태우며, 일부 나무들은 방공호를 구축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덕철 전도사와 성도들은 사택에서 비밀리에 예배를 계속하였고 서로 격려하며 국군 수복을 기다렸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그들은 최후의 발악을 하며 주민들을 더 괴롭혔고, 지주와 지식인, 기독교인들을 학살하기로 하고 명단을 작성하였다. 증언에 의하면 서석근 집사는 순교를 위해 금식기도를 하며 성도들에게 순교를 각오하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도록 권면했다고 한다. 그때 생존하신 분의 증언에 의하면, 그해 11월 6일은 추수를 하느라 지친 몸으로 잠을 자던 성도들은 아는 사람들에 의하여 하나,둘씩 불려졌고, 빨치산들이 거주하던 집으로 잡혀가게 되었다. 잡혀온 사람들은 두 손이 결박되었고, 서로 대화하지 못하게 하였다. 먼저 불려온 임유상집사가 나중에 잡혀온 손자를 보며 애절한 눈빛으로 볼을 비비며 이 세상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할아버지를 빨치산들은 구타하여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들이 정한 시간이 되자, 붙잡힌 모든 성도들을 어두움이 짖게 깔린 어디론가 끌어가기 시작하였다. 외삼줄에 두 손이 묶인 채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전혀 항거하지않고 누구 하나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으며 찬송을하며 소망을 부여잡고 죽음앞에 굴하지 않으며 형장인 풋 둠벙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리 준비된 예리한 죽창과, 서슬 시퍼런 도끼와 삽, 몰려든 빨치산, 그러나 순교의 길을 걸어가기로 작정한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기도할 시간을 요청하여 가해자들과, 지역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들의 영혼을 주님께 북탁하고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겨 우리들의 믿음의 선진들이 되었다..중략..6.25전쟁이 휴전되어 연고가 있는 유해들은 가족들에 의해 묻혔으나 당시 목회자이였던 신덕철전도사는 연고가 없어 순교 장소에 있었다. 이후 성도들이 시신을 발굴하여 유해를 상월교회 공원묘지 맨 윗자리에 안장했다. 발굴당시 선덕철 전도사는 두개골이 배위에 얹혀있었다. 그날의 죽음이 얼마나 처철한 학살 이었나를 말해주고 있다. 순교의 장소는 현 교회에서 상사부락으로 가는 길 옆 개천가 풋 둠벙이란 곳이다. 이 비는 본 교회 성도들이 순교자들의 정신을 높이고 순교정신을 계승하여 보존하는 마음으로 뜻을 모아 순교자 35인의 명단을 비에 기록하여 1993년 세워 오늘이 이르고 있으며, 매년 11월 첫 주를 순교기념 주일로 지키고 있다. 주후 2005년 1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