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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사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최악의 비국이었던 6.25전란은 불시에 남침해온 북한 공산군에 의해서 발발한 동족상잔으로 마침내는 소련과 중공군군이 북한에 합세하고 UN16개국이 남한을 도와 참전함으로 세계적인 격전장이 된 우리나라 전 국토는 페허가 되고 수백만명의 사상자와 막대한 재산손실이 발생했다. 당시에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세계는 양분화 되는 파란이 일면서 약소 민족들의 분열과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유발되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최대 규모의 격전지로 그 피해는 아직도 남아있어서 분단국의 고통을 겪고있다. 공산군의 침략을 받은 나라마다 기독교는 통제와 박해를 받았고 한때 점령당한 남한에서도 수천명의 순교자가 발생했으며 영암군내 교화에서는 80명이 순교했다. 영암군에 진입해온 북한인민군은 먼저 행정과 치안권을 장악하고 읍 교회당을 점거 주둔하면서 모든 공공기관들과 큰 가옥들까지 방화 또는 파괴하고 군경과 그 가족 그리고 우익인사들을 학살하면서 교인들을 색출하고 피난을 가지못한 선량한 신도들을 결박하여 재판과정도 없이 일정한 형장도 없이 기독교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창과 총검으로 잔인무도하게 25명의 장로와 전도사, 집사들과 신도들을 살해했다. 구림교회에서는 18명의 집사와 신도를 체포하고, 면내 우익인사 6명과 함께 도로변 주막에 감금한 채 북한 인민군들이 집총 포위하고 화목을 둘러쌓아 방화함으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내주를 가까이함은’이라는 찬송소리와 함께 화염 속에 순교를 했다. 후일 그 집터에 흩어진 유골들을 모아 합장해 놓았다가 구림유족회에서 현재의 장소로 이장을 하였다. 그리고 상월교회는 집사와 신도 26명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그 중에는 임신부와 10세 미만의 학생까지 있었고 교회당은 소각당했다. 천해교회는 광주 양림교회에서 시무중인 박석현목사 부부와 아들이 처가에 피난해 있다가 순교했고, 집사와 신도4명을 포함해 7명이 순교했다. 서호교회에서는 노흥균전도사가 순교했으며, 매월교회에서는 임자임집사가 끌려나가 끔직하게 죽음을 당했다. 삼호교회에서는 묵포 양동교회의 김재현 장로의 아들 김상규가 대학재학중에 목포 기독청년회장을 역임하고 있던중 사변을 만나 강진에 있는 외가에서 피신해 있던중 목포에 가보려고 삼호면 박영종장로의 집에 와서 은신했다가 야음을 틈타 친구와 함께 헤엄쳐서 건너가다가 바다에서 체포되어 순교를 했고 후일에 그 부친 김장로가 아들을 기념하여 그 곳에 교회를 개척하게 된것이 오늘의 삼호교회의 유래가 되었다. 이상과 같이 80명의 성도들은 불운한 역사의 질곡에서 오직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순교해갔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하게하고 후세에 교인들의 귀감을 삼기위하여 50년이 된 오늘에서야 비로서 여기에 순교비를 건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