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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 전쟁 당시 영암 상월리는 인민군들의 본거지로 사용되었다. 강진이 수복되고 그 외의 해남, 완도, 장흥 등 이 지역 일대가 군인들에게 수복되자 당시 지형이 험악했던 상월리 지역으로 인민군들이 모여 들었다. 상월리로 모여든 인민군들은 살생부 명단을 작성하여 지식인를 비롯한 경찰, 공직자, 기독인 등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1950년 11월 인민군의 조정에 의해 앞으로 나선 학살군(당시 상월교회 성도들은 인민군에 의해 순교를 당한 것이 아니라 인민군이 조정하는 상월 마을의 학살군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들은 한곳에 모인 이들을 외삼줄(삼나무 껍질을 꼬아 만든 줄로 당시 사용했던 줄 중 가장 강한 줄)로 성도들을 묶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들을 학살 현장으로 끌고 갔다. 순교자들은 학살 현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쁨의 찬송을 불렀다. 1950년 당시 상월교회에 시무했던 신덕철 전도사와 영암읍교회와 매월리교회 등에 복음을 전하고 다녔던 전도부인 나옥매 집사 등이 나서 학살장으로 끌려가는 중에도 계속해서 찬송을 부른 것이다. 또한 이들은 학살 현장에 도착해서도 학살군에게 30여분의 시간을 요청했다. 다름 아닌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30여 분간 예배를 드린 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출처 : 한국 기독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