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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역] 민간인희생사건 진실규명결정서 [결정통지서] 사건번호 : 다-4299호 / 사건명 : 포항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 신청인 : 포항시 남구 대보면 강사리 776-6/2 서종환 / 결정내용 : 진실규명 결정 / 결정이유 : 신청사건 다-4299호 포항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은 2010년 6월 8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6조의 규정에 의하여 진실 규명결정합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8조의 규정에 의하여 위와 같이 결정되었음을 통지합니다. 2010년 7월 14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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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경위] 마. 포항 6) 남구 구룡포읍 강사리 서병환 희생사건(다-4299) 영일군 구룡포읍 강사리에 살면서 영덕농림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유학을 준비하던 서병황은 우익단체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949년 3월 12일 대보지서(157P) 순경과 구룡포에서 온 7~8명의 청년단원에게 연행되었다. 이 소식은 800미터 떨어져 살고 있던 그의 부친 서영진에게 알려졌으며, 다음날 3월 13일 그의 동생 서종환이 대보지서에 갇혀 나무의자에 앉아 있던 서병환을 목격하였다. 그르나 3월 14일 새벽에 서영진 집에 찾아온 청년들로부터 "대보2리 솔백에서 아들이 죽어 있으니까 시체를 찾아가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 말을 듣고 이웃주민들과 함께 대보지서와 100여미터 가량 떨어져있던 솔백에서 등과 가슴에 총상을 당해 사망한 서병환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당시 서병환의 등 쪽에 작은 구멍이 두 개 있고, 앞쪽의 가슴에는 피가 많이 있었고, 눈을 뜬 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제적등본에 서병환은 1949년 3월 14일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1960년 제4대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보고서에 서병환은 "1949년 2월 14일(음) 구룡포읍 대보지서에서 총살되었는데 (이때) 민보당원 황 모 등이 가담하였다"라고 되어있다. (86P 요약) [조사결정]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에 대한 가해행위는 위법한 것이였다. 국군과 경찰의 이러한 행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