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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지 않고 목재를 팔러오는 사람들에게 시가를 따지는 일 없이 양곡을 마련할 수 있는 후한 값을 주어 도와주었다. 특히 1939년 이름난 을묘 흉년에는 있는 힘을 다해서 식량을 나눠주며 기아에 허덕이고 실의에 빠져있는 이웃들을 구했다. 공의 덕으로 어려움을 넘긴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서기 1939년 가을에 입암리의 노변에 표창비를 세웠으나 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오손이 심해 죽장면 지역대책협의회가 주동이 되어서 선인들의 뜻을 이어 이 지역사회의 값진 기념물을 원위치에 가까운 여기 고쳐 세운다. 사람이 사욕을 떨치기가 극히 힘드는데 애써모은 재산을 기꺼이 던져 구해준 공의 숭고한 인애의 정신은 아무리 세태가 변한다 해도 길이 이 고장 사람들의 마음의 거울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