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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의용군 호국영웅명비탑 건립에 즈음하여 1950년 6월 25일 새벽을 틈타 기습한 북한 인민군은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한 달 보름만인 8월 11일에는 포항에 진입, 고장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기에 이르렀다. 이후 UN군과 연합군의 북진이 이뤄진 9월 22일까지 42일간의 포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동부전선 최대의 격전기였다. 당시 5만여 시민이 모여 살던 포항시내의 중심지와 학산동 포항여고 교정 등은 피아간 치열한 교전으로 초토화되었으며 현재 포스코가 들어선 동촌동에서부터 연일읍 중명리를 거처 안강읍에 이르기까지 형산강 줄기는 북괴군의 남하를 저지한 최후의 방어선이었으며 북진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6.25전쟁사에 그 무엇보다도 찬연히 빛나는 것은 당시 내 고장 포항을 사수하기 위해 책가방을 내던지고 분연히 일어난 학도병들의 참전이었다. 학도병들은 당시 포항수산중학교(3,4년~고1회)와 포항중학교를 비롯한 동지중학교에 다니던 어린 학생들었으며 전국적으로 5만여 학도병들이 참전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들 학도병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과 우리포항이 번영과 풍요를 누리게 된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용흥동 탑산 정상 전몰학도 충혼탑과 포항여고 교정앞 학도의용군 6.25전적비에 이들의 빛나는 전과와 숭고한 뜻을 기리는 자치들이 송도 송림속과 모갈산 등 곳곳에 남아있어 당시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일만오천육백구명의 동문들은 당시 17~18세였던 우리 선배님 80여분이 나라의 부름없이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영웅적인 곳곳의 전투장에서 죽음의 넋으로 흩어져 있음을 슬퍼만 할 수 없고 또 수많은 전장에서 이슬처럼 저벼린 군번없는 무명용사라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 영일만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모교에서 편히 쉬도록 호국영웅명비탑을 세워 그 숭고한 뜻을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2015.12.22 포항해양과학고등학교 총동창회 제27대 회장 이진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