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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육전대(海軍陸戰隊) 전적비 1950년 6월 25일 무력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38도선을 넘어 부산과 진해를 향해 진격해 왔다. 북한군 제5사단은 제766유격대를 앞세워 동부축선을 따라 7월 초에는 울진을 점령하고 7월 10일에는 영해-영덕 일대에 이르러 낙동강 동부 요지인 기계.안강 지구가 위협받고 있었다. 당시 해군본부는 7월 9일 해본 작명감 제56호에 의거 진해에서 훈련중이던 해군신병 제16기를 주축으로 480명의 해군육전대를 긴급히 편성하여 포항지역으로 남진하는 북한군을 저지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병력과 장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기천 소령 지휘 하의 해군육전대는 단독 전투인 구암산전투(7.11~7.17)를 히작하여 영덕.포항전투(7.18~8.11), 포항탈환작전(8.11~8/19)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렀다. 영덕.포항전투와포항탈환작전에서는 국군 제3사단 23연대(7.18~8.10), 제17연대(8.11~8.16), 수도사단(8.17~8.20)에 배속되어 유엔공군의 지원하에 합동 연합작전을 치렀다. 위의 3개 전투에서 해군육전대는 북한군 사살 수백여명, 생포 6명을 비롯한 인공기와 수많은 총기, 탄약, 장비등을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으며, 아군의 피해는 전사 6명, 부상 19명에 불과했다. 해군육전대는 기계.안강 지구를 공략한 북한군 5사단과 766유격부대의 결사적인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최후의 일순간까지 용전분투하여 작전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켜 미 제1기병사단의 포항상륙작전, 아군의 낙동강저투 등에 큰 기여를 했다. 이에 대한민국 해군은 그 육전대 용사들의 불멸의 투혼과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 작전지역의 일각인 이곳에 전적비를 세운다. 2013년 8월 25일 해군참모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