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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기계면 화대리 비학산 대한법화종용화사 주지 법련 스님(속명 한연호). 스님은 6·25전쟁때 기계·안강 전투에서 숨진 남편을 위해 남편이 전사한 자리에 지금의 용화사를 짓고 영가를 위로하기 위한 조석예불을 하고 있다. 남편은 당시 수도사단 18연대 중대장으로 기계·안강전투에 투입됐다가산화한 고 권태홍 대위(당시 29세). 20대 꽂다운 나이에 미망인이 된 스님은69년 이곳에 들어와 30년간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으며 지난 96년에는 기계·안강전투에서 남편과 함께 산화한 모든 영령들을 위로하기위한위령탑을 사찰내에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매년 6월 현충일이면 지역 장병들과 함께 이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위령제를 지내며 6·25전쟁의 상흔을불법을 통해 회향하고 있다. 스님이 남편을 위해 절을 세우고 불법에 귀의하게 된 것은 6·25전쟁에이은 월남전의 영향이 크다. 2남 1녀를 어렵게 길러왔던 스님이 군복무를하고 있던 큰 아들을 월남에 보내게 된 것. 그러나 월남전에 참가했던 아들은 전쟁터에서 정신적인 상처를 입고 69년 귀환을 했다. 이때부터 스님은아들의 쾌유를 위해 명산을 돌며 기도를 하게 된다.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 태어나 불교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어요. 그저 남편이 산화한 이후 베개를 적시며 귀 동냥으로 들었던 관세음 보살을 외치는것이 고작이었지요. 그런데 기도중에 피 묻은 옷을 입은 남편이 보이고 관세음보살님이 경주 비학산으로 가라는 계시를 했습니다” 스님은 기도에서 예시했던대로 물어 물어 들어오게 된 곳이 지금의 비학산 용화사 자리. 남편이 산화한 바로 그 자리였다. 스님은 그후 이 곳에 움막을 짓고 본격적으로 남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기도를 올리게 됐다.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면서 움막안에서 계속된 스님의기도는 주변에 알려지게 됐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기도중에 불상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기도중에 본 불상과 같은 모습의불상을 움막에 모셨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불교를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교경전과 예식집 등을 사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군요. 지금의 절은 바로 이들의 원력으로생기게 된 것입니다” - 출처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