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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에 불복 구속되었다 풀려나 1918년 간도 종성동으로 이사, 북방포교를 시작 1919년3월 독자 신무씨가 출생 1906년 장녀 마태(마르다), 1909년 차녀 마아(마리아), 1922년 3녀 기세아(긋시아)의 4남매를 두시었고 1921년 간도 종성동 국자가 교회 내 성경학원을 설립 원장이 되시었다가 1922년 12월26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 1924년 감목직을 3대 전치규목사에게 물려주고 1937년 일제에 비 협조 이유로 4개월간 조사받고 풀려나시어 만주에서 8년간 순회목회 1945년 해방후 귀국 강경 침례교회 담임목사로 취임, 1946년 9월 강경침례교회 제36회 대화회에서 총회장직에 피선되시고 일인독재 교단체제를 민주체제인 회중정치로 전환하시었다. 강경 침례교회내에 고등성경학원을 설립, 원장으로 취임 1947년 복음찬미를 재출간 1949년 총회에서 동아 기독교를 대한 기독교 침례회로 명칭변경 1950년 6.25동란 발발후 피난을 하지 않으시고 후배 김장배목사에게 시켜 손으로 크게 쓴 명함을 들고 인민위원회 내무서등을 찾아가시어 신분을 밝히시고 전도까지 하시었다. 9월28일 공산군이 퇴각하던날 밤, 공산군에게 체포되시어 김요한집사와 또 한사람과 함께 끌려가시는데 젊은 두사람은 포승을 하고 목사님은 노인이시라고 포승을 하지 않았는데 이곳 형장에서 공산군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젊은 두 사람의 포승을 풀어주시며 피신시키고 목사님만이 자리에서 처형순교하시었는데 다음날 피신하였던 김요한 집사가 찾아가보니, 순교하신 시신으로 발견되시어 마차로 운구 고향 선산에 안장되신 것입니다.이때까지 평생을 반려하신 사모님은 노성면 의령남씨로 1884년생이시다. 목사님께서는 66세를 일기로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