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page


125page

장호 김용순장군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지는 산주수명한 경남 하동군 악양면 중대리에서 김해김씨 70대손 아버지 김주봉, 어머니 차왕남의 2남 4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육군사관 제3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후 6.25 한국전쟁시 수많은 전투에서 임전무퇴의 용맹한 장군으로 특히 철의 삼각지 전투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워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한 용장이었고 육군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학구파이기도 하였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박정희 장군과 뜻을 함께하여 국가재건회의 문공.사회및 내무위원장으로 새로운 국가건설에 초석을 놓았고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하여 국외정보에 심혈을 기울여 기틀을 세운 후 육군중장으로 예편하여 제6대, 7대 국회(하동.사천.삼천포 선거구)에서 전국 최고득표율로 당선되어 국회운영위원장을 지냈으며, 국가 경제가 심각하게 어려운 중에도 지역발전을 위해 영호남의 산업철도인 경전선을 개통하였고, 금성면 갈사 제방을 축초하여 오늘날 갈사면 번영을 가져 왔으며, 묵도 제방을 구축하여 하동 농업의 선도적 역할과 악양무딤이 돌을 개척함으로써 실로 오늘의 평사리 황금들판을 이룩하였고, 섬진강에 해랑 제방을 설치하여 하동문화 산실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125page

가난이 숙명처럼 여겨졌던 시대 상황에 국가적으으로는 한국 산업 발전을 위해 한국 산업 통합대회를 발족하여 한국 경제의 원동력이 되었고, 전국 농민회 회장이 되어 전국인구중 70% 농민들의 굶주림을 막기 위해 치밀한 계획과 과감한 결단으로 농민들의 소득증대와 보릿고개를 없애는데 큰 힘이 되었다. 정계를 떠난 뒤에도 5.16민족상 이사장에 취임하여 경제.문화.사회 등 다양한 방면의 인재 발굴에 애쓰시다 애석하게도 원대한 국가 부흥과 내고장 발전에 꿈을 못다펴고 51세로 세상을 떠나 장군을 숭모하는 많은 이들이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창군을 흠모하는 군민들이 1976년 11월 28일 하동읍 광평리 송림에 장군의 유덕비를 노산 이은상선생께서 글을 짓고 해정 박태준 선생께서 글을 쓰시고 장호회장 김형철씨와 회원의 노력으로 세웠으나 주변환경 변화와 시대 변천에 따라 비신은 현지에 묻어두고 다시 장군을 흠모하는 하동군, 장호회, 하동군 재향군인회에서 牛峙(소재) 안보공원에 다시 세워 민족사적 리더쉽과 하동발전을 비상시킨 장군의 생전 국가관과 지역발전의 뜻을 하동청사에 길이 전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고자 한다. 2005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