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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바쳐 조국에 충성하다 고 채병덕장군은 1915년 4월 17일 평양에서 출생하여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국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 제1연대장으로 취임 국군 창설의 주역으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과 1950년에는 제2대 및 4대 육군참모총장으로서 국민개병제의 병역법과 징계령을 제정하는 등 창군 기반을 확고히 다져 놓았다. 동족상잔의 6.25전쟁 발발시에는 참모총장으로 초기전쟁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당시 절대적으로 열세인 군사력을 가지고는 월등히 우세한 북한군을 감당할수 없었으며 3일만에 서울을 적에게 빼앗기는 상황에 이르자 장군은 육해공군의 총 사령관으로서 그 책임을 통감하고 직위에서 물러나 영남관구 편성사령관으로 보직되었다. 이후 1950년 7월 27일 섬진강을 건너 하동-진주-낙동강 하류지역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을 맞아 열세한 한미연합 병력으로 적 공세를 저지 하던중 현 위치에서 장렬히 전사 함으로써 조국을 위한 충성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 100여명과 미군 313명의 꽃다운 청춘들이 장군과 함께 산화하였다. 이로 인하여 북한군의 진격속도는 상당기간 지연되었으며 이는 UN군의 총반격 작전을 위한 시 공간적 교두보를 확보하여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군인으로서 직위에 연연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한 장군의 행적은 오늘을 사는 우리 후배들에게 조국에 대한 진정한 충성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 이와 같은 전공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1954년 하동군민의 성원으로 적량면 동산리 계동에 세워졌던 전사비를 경남도민과 제39사단 성우회 하동군재향군인회와 뜻을 모아 전사 장소인 이곳으로 옮겨 건립하다. 서기 2002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