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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불란서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한국의 자주독립국가임을 세계만방에 알림과 인정을 호소하는 장서를 작성하여 유림 대표 137인의 한 분으로 서명하니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사건이다. 그후 4월 2일 성주 장날의 만세운동으로 장서에 서명한 장석영 송준필 성대식 선생 등이 피체당하고 외국공관 및 국내 향교에 발송한 장서 원문이 도착하면서 일경의 검거 선풍에 선생께서 왜경에 피체당하시어 혹독한 고문과 고초를 당하시고 평생을 요시찰로 창공을 날지 못하는 날개 잃은 학이었다. 선생은 한말 유림의 청빈한 선비라 궁핍한 환경과 굴욕의 굴레에서 저항과 울분으로 일관하게 사시다 숙원의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시고 1935년 2월 15일 향년 68세로 한 많은 생을 영면하시었다. 합방 당시 피 끓는 젊음의 때도 지났으나 경세에도 적극 참여 못하고 망국의 한을 풀길 없어 시는 음풍영월이 아닌 울분과 비탄에 쌓이고 민초들의 애탄을 토로하였다. 귀중한 옥고는 정리되지 못한 체 6.25의 참화로 손실되고 다만 시권만이 남았다. 선생의 시 속에는 강개한 항일정신과 억압받은 군중들의 면모와 황량한 민초들의 애탄과 농경사회의 관습과 목가적인 주옥같은 전원시를 남기고 있다. 슬프다. 선생이 고고히 가신지 70여년 광복 후 66년 이제야 조국 대한민국의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니 만시지탄이나 선생의 뜻과 공적을 돌에 새겨 고향 고을 호국의 동산에 추모비를 세우니 감개가 더하다. 공의 배위에는 인동장씨 의근공의 따님이며 1남 2녀 중에 장남에 용연이며 녀에 성산인 이원식 동래정 영우이다. 손에는 상일 상업 상정이며 손녀에는 창녕인 조희두 진주인 강신해 경주인 이중민이다. 증손 지환 외에 여럿이며 현손은 수호이라. 5대 주손은 현석이다. 그외에는 다 기록할 수 없다. 유택은 2010년 11월 27일 심천 선영에서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 4지역 323호에 안장하였다. 선생의 동지인 안해동 선생께 보낸 만시를 되새기며 명에 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