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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증 익문익공 부군이시며 10대조의 휘는 담명이시며 가의대부 이조참판 세자우 부빈객 부군이시다. 누세 내려와 고조의 휘는 문연이요. 증조의 휘는 상락이고 조의 휘는 반환이며 고의 휘는 수익이시다. 공은 3남 2녀 중 차남으로 고향인 왜관읍 석전(돌밭) 본제에서 1916년 병진 3월 16일에 태어나셨으며 장형의 휘는 형진이요. 계제의 휘는 채진이시다. 공의 휘는 항진이요. 자는 유중이며 호는 소암이시다. 공은 어려서 기품이 영철하고 지절이 고결하시었다. 자라서 왜관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하시었다. 당시에는 3.1독립만세운동이 있은 뒤라 온 국민이 국권회복과 자주민족을 갈망하는 오직 독립정신만이 팽배해 있을때였다. 공께서는 친일교사와 친일학생 배척운동의 선봉에서 활약하시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신 후 결국은 강제퇴학을 당하게 되었다. 그 후 1932년 고향인 왜관에서 청년동지회를 결성하여 독서회 노동자 야학회를 통해 조국의 독립과 신지식사상 농촌계몽과 문맹퇴치운동을 통해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37년 12월부터 농촌진흥조합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항일운동을 하던 중 1938년 2월 함께 활동하던 동지들과 또다시 일경에 피체되어 1년 9개월의 옥고를 당하셨다. 영어에서 풀려나신 공께서는 극심한 고문 후유증과 계속되는 일경의 감찰에도 불구하고 조국광복이 될때까지 지속적으로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하셨다. 긴 세월이 지난 후 정부로부터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공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2010년 3.1절에 대통령 표창이 서훈되었으며 2010년 10월 11일에 공의 묘지를 자고산 선영하로부터 국립대전현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