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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세계를 구한 李承晩(이승만)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 “우리는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남침 보고를 받은 직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무초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우리는 남자.여자아이들까지 나와서 필요하다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입니다.(We will call every man, woman and child to come out and fight with sticks and stones if necessary)”라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혔다. 트루먼 대통령도 애치슨 국무장관으로부터 남침보고를 받자마자 “Dean, we've got to stop thos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영도하는 국군이, 한미동맹도 없는 상태에서 스탈린·모택동·김일성 연합세력을 상대로 1:3으로 싸우며 버티고 있는 가운데 트루먼 대통령은 남침을 '마적단 습격사건'으로 규정하고 유엔군 기치 하의 미군 출동을 결단했다. 李 대통령은 북한군이 물밀듯 남진하고 있던 그해 7월 19일 대구에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직접 영문편지를 썼는데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가슴 속에 심어서 키워온 제국주의적 침략의 악성(惡性) 암세포들을 이번 기회에 영원히 도려내어” 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0년 8월에 전개된 다부동(多富洞) 전투는 한미군(韓美軍)이 최초의 연합작전으로 북한군 주력을 무찔러 인천상륙작전과 북진의 길을 연 세계사적 결전이었고 한미동맹을 예약한 승리였다. 李 대통령은 1953년 8월 9일 성명에서 "한미방위조약이 성립된 것은 그 영향이 자손만대에 영구히 미칠 것이니, 우리가 합심합력(合心合力)하기만 하면 침략할 자가 없을 것이다"고 기뻐했다. 한미군을 주력으로 한 유엔군의 항전(抗戰)으로 대만이 살았고 일본이 경제부흥, 서독이 재무장, NATO가 군사동맹체로 강화되었으며 미국은 군사비를 네 배로 늘려 본격적인 대소(對蘇)봉쇄정책에 나섰고, 한국은 '자유의 방파제' 덕분에 번영의 길을 달려 그 40년 뒤 소련 및 동구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다.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2023년 4월 美(미)의회 연설에서 "한미동맹은 정의·평화·번영을 위한 것"이며 "세계시민들의 자유를 지키고 넓혀나갈 것이다"고 선언했다. 이승만·트루먼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을 잊지 못하는 우리는, 세계시민 정신으로 다부동에서 함께 흘린 두 나라 젊은이들의 피값으로 동서냉전에서 자유세계가 승리하고 한국 전체가 부자동네(多富洞)가 되었으니 이제는 자유통일로 북한을 해방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때라고 다짐하며 그런 뜻을 모아 두 분의 동상을 여기 세운다. 李承晩(이승만)트루먼朴正熙(박정희)동상건립추진모임 2023년 7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