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page

기 획 2011년 10월26일 수요일 13 보좌관 아찬(阿干) 서천(西川)을 보내 백제 장군 윤충에게 조건부 항복을 제의하게 했 다. 서천이 대야성 북문의 성루에 올라갔다. 그리고 다가온 백제 전령에게 항복 조건과 관련해 할 말이 있으니 장군 윤충을 불러 달 라고 말했다.  고소산성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던 윤충이 전갈을 받았다. 그는 부하들 일부를 대동하 고 성을 내려와 황강을 건넜다. 그리고 대야 성의 북문으로 다가갔다. 서천이 화살의 사 정거리 약간 밖에 말을 타고 서 있는 윤충에 게 큰 소리로 말했 다.  ‘삼국사기’는 서천과 윤충이 주고 받은 말 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만약 장군이 우리 를 죽이지 않는다면 원컨대 성을 들어 항복 하겠다.” 윤충이 대답했다. “만약 그렇게 한 다면 그대와 더불어 우호를 함께하겠다. 그 렇지 않을 경우 해를 두고 맹세하겠다!” 윤 충의 목적은 품석과 고타소랑의 ‘머리’에 있 었다. 그들이 항복해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 온다고 하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군 대를 대야성 앞에서 물렸다.  품석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서천을 시 켜 성문을 열라고 했다. 그러자 죽죽이 말렸 다. 성을 비우고 나가면 사람들이 신라로 돌 아가는 것을 윤충이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죽죽은 윤충이 무엇 을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삼국사기’는 전한다. “백제는 자주 번복을 잘하는 나라이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윤충의 말이 달콤한 것은 반드시 우리를 유 인하려는 것으로 적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쥐처럼 엎드려 삶을 구하기보다는 차라리 호 랑이처럼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낫습니다.”  품석은 생각했다. “이놈이 백제군과 끝까 지싸우다가같이죽자고하고있네. 난못죽 어!” 죽죽의 결사항전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 절했다. 대신 품석은 쥐처럼 꾀를 내 병사들 을 먼저 내보내기로 했다. 백제군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안전을 확인한 후 처자와 함 께 나가겠다는 심산이었다. 품석은 부하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자기일신의보신에만집착했고, 누구를희생 시키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문이 열렸다. 기죽은 병사들이 품석의 명령에 떠밀려 밖으로 나갔다. 병사들은 흩 어져각자의갈길을갔다. 그런데멀리서백 제군이 갑자기 나타나 그들을 사냥하기 시 작했다. 무장해제한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백제군은 대야성의 신라인들을 살려두지 않으려고 했다. 백제군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자 항복협상을 주도하던 품 석의 지휘권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절망 의 순간에 사람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성문이 닫히고 죽죽이 대야성의 지휘권을 장악했다. 결사항전의 길만 남았다. 죽죽은 남은 병사들을 재조직해 성의 요소요소에 배치했고, 현장에서 직접 지휘했다. 당시의 형세로서는 대야성 사람들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죽느냐 는 것만 남았다. 군인답게 싸우다 죽느냐 아 니면 적에게 포박돼 욕 속에서 참수당하느 냐 문제였다.  백제군의 파상적인 공격 속에서 병사들의 힘이 소진돼갔다. 화살도돌도다떨어졌고, 백제군이 어느 한 지점을 돌파했다. 적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성주 품석은 처자를 데리고 지휘소에 올라가 숨 었다.  대야성 내부의 곳곳에서 난투극이벌어졌 다. 죽음의냄새가 성안에 가득했다. 밀려오 는 백제군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군사들 은 싸울의지를 잃었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죽죽은 동료 용석과 함께 끝까지 싸우다 명 예롭게 죽었고, 창검을든백제군은 계속 밀 려왔다. 성안에 있던 남녀 1000명 정도가 성의 구석에 몰려 백제군의 포박을 받았다. 그 가운데는 품석과 그의 처자가 있었다.  승리한 장군 윤충은 파발을 띄워 승전 소 식을 사비의 도성에 있는 의자왕에게 알렸 다. 그리고 서신에는 포로처리문제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었으리라. 무엇보다 품석과 그 처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 명령 하달을 정 중히 요구했다.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받기 는 했 지만너무나 중요한 사안이라 의자왕 에게 확인이 필요했다.  그동안에도 품석은 자신의 생존에 집착하 면서 좋은 소식이 오길 기다렸다. 포로가 되 어 백제에끌려 가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고, 장인 김춘추가 어떻게 해서든지 백 제에 대가를 주고 빼낼 것이다. 그는 비겁하 고 철저하게 비굴하기도 한 인간이었다. 김 부식이 ‘삼국사기’에 품석 아버지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의 집안에 대 한 배려일 수도 있다.  사비에서 답신이 왔다. 포로가 된 자들을 줄줄이 묶어서 백제 본토로 데리고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단 대야성주와 신라왕족 의 피가 흐르는 자들은 ‘몸’은 거기에 두고 ‘머리’만 가져오라고 했다. 신라왕족을 포로 로잡아 백제 백성들에게 보이면 도의상 죽 이기 힘들어진다.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에 게는 어린아이들까지 딸려 있지 않은가. 전 투가벌어져 피 냄새가진동하고 있는 현장 에서 처리해야 덜 잔인하게 여겨진다.  포박된 1 00 0명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신성한 피를 가진 가족의 처형이 집행되려 하고 있었다. 품석은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 부터백제가 노린 것은 자신과 가족의 머리 였고, 죽음만이 자신을 구원하리라는 사실 을. 그의앞에군량창고에불을지른부하검 일이 서 있었다. 그는 방화 후혼란을 틈타 백제 진영으로 도망쳤고, 백제군에게 대야 성의 허점을모두알렸다. 대야성에 대한 최 후공격에도 앞장섰다.  검일이만인앞에서품석에게모욕을주었 다. 그리고 자결을 강요했다. 무능한 상관의 비행 그리고 분노한 부하의 배신이 가져온 비극의 한 장면이었다. 품석이 처와 자식을 먼저죽이고목을찔러자결했다. 즉시 한 가 족의 몸에서 머리가 분리됐고, 소금에 절여 졌다. 그리고 정갈한 나무상자에 담겨 지리 산을 넘어 사비도성으로 배달됐다.  코끝을 쥐고 머리들을 확인한 의자왕이 성 왕의 영전에 그것을 바쳤는지 기록이 없어 알수 없다. 하지만 머리들은영겁의 형벌을 받았다. 사비 감옥의 바닥에 그것을묻어죄 수들이 밟고 지나가게 했 다. 신라왕실에 대 한 과거의감정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이로 써의자왕은88년전 과거를 설욕했고, 이제 막확립된 자신의 독재체제에 정당성을 부여 했다. 백제의 왕실은 물론이고 귀족사회도 의자왕의 성취를 경이롭게 바라 볼 뿐이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 다. “성주 품석이 처자와 함께 나와 항복하 자 윤충은 모두 죽이고 그 머리를베어 (백 제) 왕도에 전달하고, 남녀1000여명을 사 로잡아 나라 서쪽의 주현(州縣)에나누어살 게 했다. 그리고 군사를 (대야성에) 남겨 두 어그성을지키게했다. 왕은 윤충의공로를 표창해 말 20필과곡식1000섬을 주었다. ”  대야성 함락소식이 신라왕경에 전해지자 백성들은 망국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느꼈 다.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늙은여왕은완전 히 무너진 모습을 보였고, 자식과손자가 그 렇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김춘추는 바닥에 접질리듯 주저앉았다. 눈을 똑바로 떠 허공 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 다.  그는 죽어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감옥의 바닥에 갇힌 자식과 손자의 원혼을 생각하 면서 괴로워했다. 이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그러던 차에 고구려에서 연개소 문이 유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는 소식 이 들려왔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Á ÈÉÅ ÆÂ Ã! ÁÃÂ ÄÅ Ç Ä ! 황강과 합천 읍내를 배경으로한 대야성지의 모습. 오른쪽 낮은 산황강에접한지점에연호사와함벽루가 위치하고 있다. 연호사는 642년와우선사가 대야성 싸움에서 숨진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과 장렬하게 전사한 장병 2000여의 영가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사찰로 전해 진다. 합천군 홍보실 제공 아침에 해가 뜨자 대야성의 불에 탄 건물들이 눈에 드러났다. 잿더미를 보고 대야성 사람들은할말을잃었다. 백제군과싸워야하는데식량이모두재로변했다. 황강의물 만 떠 마시고 버틸 수는 없었다. 항전의 의지가 꺾였다. 백제군이 한 번만 더 몰려오면 대야성은무너질 것이다. 그순간이눈앞에 온것을직감한사람들 모두는 동요하기시 작했다.  대야성의 신라 지휘부 내부에서 항전과 강화를 놓고 말이 오고 갔다. 참모 죽죽은 항 복을 결사반대했다. 하지만생명을 연장해보려는성주품석이 이번에도딱잘랐다. 항 복을 하고 목숨을 구하는 것이 순리라고 그는 여겼다. 품석다운 생각이었다. <42> 대야성 함락 의자왕, 신라 왕족 처형 과거 복수하고 독재 정당성 부여 김춘추 충격에 빠지고 백성은 국가 존망 위기감에 빠져 편집손병식 기자 <신라 품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