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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노노사업장’, 이후 이 이름은 주민들에게 희 망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환영 받은 것 은 아니었다. 세넌초등학교 교장인 타레페 씨(38세)는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고 했다. “우리는 월드비전이 우리의 종교를 바꾸러 온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3~4년이 지나면서 깨달았죠. 월드비전은 우리의 종교가 아니 라, 우리 삶의 질을 바꾸려 한다는 것을요. 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우리들이 마음을 열 기 시작한 게.” 주민들의 닫힌 마음만큼이나 힘들었던 것은 교육 환경이었다. 타레페 씨는 말을 이었다. “책걸상이 없어서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받았어요. 바닥에는 먼지진드기, 벼 룩 등이 있어 아이들은 몸을 긁느라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죠. 교실은 물론 교무실에 도 책상이 없었습니다.” 식수 사정도 비슷했다. 아이들은 더러운 강 물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 장티푸스와 아메바 (대소변이 식수로 유입돼 생기는 수인성 질 병, 장염의 일종으로 심할 경우 간도 손상된 다.) 등의 질병에 자주 걸렸다. 부모들은 물 을 긷느라 일도 못할 정도였다. 후원 아동 페 이사의 엄마인 타델루 씨는 “무거운 물통을 어깨에 메고 왕복 두 시간 정도 물을 길어 오 면, 힘이 다 빠져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 다.”고 했다. 화장실 역시 있을 리 만무했다. 대소변은 곳곳에 버려져 있었고, 맨발로 다 니는 아이들의 찢어진 발 사이로 병균들이 속속들이 침투했다. 7년 전의 노노가 그랬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을 곳곳에서 아이 들은 마치 언제 꺾일지 모르는 꽃과 같았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2002년 10월, 2000명 의 마을 아이들이 월드비전의 결연 아동으 로 등록됐다. 그리고 마을에도, 아이들의 삶 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노노 “공부도 하고, 우유도 먹어요.” 잘 몰랐다. 그게 뭔지. 후원이라는 말은 들었 는데, 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에티오피 아 시골에 사는 부모님에게 ‘후원프로그램’ 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했고, ‘외국에 사는 사 람이 아무 이유 없이 울 가족을 돕는다’라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월드 비전이 아이들을 잡아다 외국에 팔 거라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알레미뚜가 결연 아동이 된 것은 여섯 살 때였다. 아버지는 월 드비전 결연 담당자의 설명을 여러 번 듣고, 고심 끝에 아이의 결연을 승낙했다.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보고 의심을 접었 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원자가 보 낸 선물과 편지를 받았다. 자신을 한국에 사 는 군인이라고 소개한 박수민 후원자는 사진 과 크레파스, 스케치북, 그리고 장난감을 보 내왔다. 어린 알레미뚜는 기뻤다. ‘한국이라 는 나라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곳의 어떤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구나.’ 이 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가족들 도 기뻐했다. 아버지는 후원 아동 부모 대상 직업교육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가축 사육 법, 야채, 사과 재배법 등을 배웠다. 그리고 2 년 전에 월드비전으로부터 소를 받았다. 알 레미뚜는 이후의 상황을 기억했다. “아버지 가 소를 받기 전에는 전통빵인 인제라와 케 따만 먹었어요. 반찬도 없었어요. 하지만 집 에 소가 생기고 난 후부터 우유와 요구르트 를 먹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좀 지나서 밥상 에 야채와 감자, 토마토도 올라왔어요.” “예 전에는 끼니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소 덕 분에 한 달에 600비르(미화 20달러)를 더 법니다. 정부 공무원보다 더 많이 벌 고 있죠. 믿어지세요? 가난한 농부였 던 제가 이만큼 번다는 것이……” 이렇게 혜택을 받은 가정이 알레미뚜 네만이 아니다. 현재까지 30가정이 소 를 받고, 248가정이 가축 사육 훈련을, 714가정이 야채 재배 교육을, 558가정 이 과일 재배 교육을 받았다. 알레미뚜의 집에는 3개월마다 한 번씩 봉사자가 온다. 알 레미뚜의 생활에 불편한 것은 없는지, 건강 사 랑 의동 전 밭위 에 서사 랑 의빵 을들 고있 는아 이 들 월 드 비 전 의도 움 을받 아공 부 하 는아 이 아 프 리 카지 역 에 서식 수펌 프공 사 를하 고있 는월 드 비 전직 원